文正德
1928-08-30 ~ 1947-10-10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문정덕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북 남원(南原) 사람이다. 1944년 5월 일본의 패전을 예견하고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문정덕은 1941년 남원의 국민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고등공업학교(東京高等工業學校)에 입학하였으나, 민족차별에 반대하여 1년만에 자퇴하고 귀국하였다. 귀국 후 1943년 도립남원의원(道立南原醫院)의 잡역부로 일하던 중, 그는 『신조선(新朝鮮)』에서 한국인을 멸시하는 글을 읽고 식민지 조선의 비참한 현실을 절감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1944년 5월 도립남원의원의 견습 간호사인 김정도석(金井道石)에게 일제가 내세우던 내선일체(內鮮一體)의 허구성을 지적하면서, 나라가 있으면 이러한 경멸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그리고 1944년 6월 미군이 사이판에 상륙했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조만간 일본이 패배할 것을 예견하여 민족 독립이 도래했음을 주위의 사람들에게 주장하였다. 일제가 전시동원 체제 아래 인적·물적 약탈을 강화해가자, 그는 남원군청(南原郡廳)에 다시는 사람들을 모집하지 말라는 협박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그는 이 일로 직장에서 해고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경에 붙잡혀, 1944년 11월 13일 전주지방법원 남원지청에서 소위 보안법·임시보안법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8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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