閔泳琬
1911-08-20 ~ 1976-01-19·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민영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서울 종로(鍾路)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가족을 따라 상해(上海)로 건너갔다. 1929년 7월 상해에서 임시정부요인의 지도하에 청소년의 독립정신 계몽 등을 목적으로 조직된 화랑사(花郞社)의 총무 겸 재무간사로 선출되어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일에 주력하였다. 1930년 9월 중국 항주(杭州)에 있는 중앙항공학교(中央航空學校)에 입학하여 항공술 조정술을 익히고, 1933년 7월에 동 항공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과 동시에 그는 동교 비행과 보험산실(保險傘室)에서 복무하였다. 이후 그는 1934년 2월부터 1942년 5월까지 중국 공군의 항주(杭州) 제1총참(第1總站) 지하 공작원(工作員)으로서 항일독립투쟁을 계속하였다. 194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5차 개헌을 단행, 주석 부주석 중심 지도체제로 변경될 때 그는 김 구 주석의 밀령(密令)을 받고 무기를 공군 비행기편으로 운반하는 등 편의를 제공하고 상해 남경(南京) 항주 등지의 적정(敵情)을 광범위하게 수집 임정에 보고하는 등 활동을 계속하였다. 한편 그는 1942년 5월부터 1944년 4월까지 운남성(雲南省) 곤명(昆明) 소재 중국 중앙공군군관학교(中央空軍軍官學校)에서 보험산실장(保險傘室長)을 역임하였다. 그후 광복군에 입대하여 총사령부에 복무 중 광복을 맞이하여 1945년 11월 23일 김 구 주석 등과 함께 귀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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