閔元明
(1876)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민원명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도 해주군(海州郡)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고, 옥고를 치렀다. 해주에서는 3월 1일 읍내 남본정(南本町) 기독교회에서 독립선언식이 개최되었다. 선언식 직후 주도자들이 체포되자, 다시 3월 9일 읍내 남욱정(南旭町)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하였으나 계획이 누설되어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하였다. 그런데 3월 10일 옹진군 내의 천도교인 수백 명이 해주 읍내에 들어와 독립만세시위를 벌이자, 해주의 기독교·천도교·불교의 신자를 비롯한 군민들도 합세하여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영향을 받아 해주에서는 3월과 4월에 각 면으로 만세시위가 확대되었다. 민원명은 4월 3일 오후 2시 경 가좌면(茄佐面) 취야리(翠野里) 장터에서 수백 명의 군민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내로 행진하였고, 가좌면사무소와 취야리 경찰관주재소 앞에서 독립경축식을 행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민원명은 1919년 10월 25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7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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