閔致榮
1892-06-23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閔致泳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민치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음력 7월 이래 황해도 평산군(平山郡)에서 독립주비단원(獨立籌備團員)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음력 7월경 황해도 평산군 세곡면(細谷面) 수동리(修洞里)에 사는 유상렬(柳相烈)은 독립주비단에 가입했다. 그리고 대단장(大團長) 민승현(閔昇顯)의 예하에서 소단장(小團長)이 되어 민치영ㆍ서의배(徐義培)ㆍ조창선(趙昌善)ㆍ신경직(申敬直) 등을 단원으로 가입시키고 군자금 모집과 밀정 처단 등의 활동을 하였다. 민치영은 1920년 음력 10월 4일 밤 서의배ㆍ조창선과 함께 평산군 세곡면 군동리(群洞里) 양재성(梁在星) 등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했다. 이후 1921년 12월 2일 오전 7시경 평산군 세곡면 수동리 이만석(李萬石)의 집에서 도순사(道巡査) 총미수언(塚尾秀彦)ㆍ구구양치(溝口良治) 외 4명과 전투를 하다 체포되었다. 1923년 1월 3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과 살인ㆍ사체유기손괴ㆍ주거침입ㆍ강도ㆍ강도미수ㆍ강도상인(强盜傷人)ㆍ공무집행방해ㆍ살인미수ㆍ총포화약취체령(銃砲火藥取締令) 위반 등으로 징역 10년을 받고 상고했지만, 같은 해 5월 10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4년 징역 7년 7월로 감형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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