閔泰崑
1917-12-17 ~ 1944-11-22·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민태곤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40년 일본 동북제대(東北帝大) 문학부(文學部)에 재학 중 조선의 독립과 신사회 건설을 목표로 동지들과 함께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평소 민족의식이 강했던 민태곤은 동년 5월경부터 뜻이 같았던 오창근(吳彰根) 등 조선인 유학생들과 모임을 거듭한 후, 조선민족 독립을 위하여 지도자로서 조선민중을 지도, 계몽할 수 있는 이론체계를 정비함과 동시에 자기의 실력양성에 노력하기로 합의하고 동지 규합에 나서기로 하였다. 마침내 신정호준(新井鎬俊) 등 5명을 동지로 결집하여 총 12명으로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이후 각자 하숙집 등에서 수차례 모여, 우리의 운동이 발전할 수 없었던 것은 중심모체가 없었기 때문이며 이제 이 비밀결사를 중심으로 각 운동자의 지도계몽에 임하자고 결의하였다. 그리고 실천활동으로, 첫째 동지를 규합하고 독립운동 단체의 건설을 위해 사회주의사상의 채용 및 연구, 둘째 조선 내 신분제도의 타파, 셋째 학생들에 대한 군사교육 및 창씨개명 반대, 넷째 조선에서의 의무교육제도 실시, 다섯째 재일 조선인 노동자의 생활개선 등을 협의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다가 민태곤은 1941년 12월 일경에 체포되어 1943년 4월 22일 센다이지방재판소[仙台地方裁判所]에서 기소유예를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9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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