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甲釗
1887-03-12 ~ (1910)·대한제국
이명·자·호 朴三峯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갑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라북도 임실(任實) 사람이다. 진안 석전리(鎭安 石田里)에서 1907년 9월 의병을 일으킨 이석용(李錫庸) 의진에서 부대장으로 활약하였다. 본래 이석용은 동향인 전해산(全海山)과 함께 거의하여 장수(長水)·진안(鎭安)·용담(龍潭)·임실(任實)·남원(南原) 등지에서 활약한 인물이다. 이들은 모두 호남창의진(湖南倡義陣)의 기삼연(奇參衍)의진 휘하 의병장으로 소속되게 된다. 당시 의거 초기의 이석용 의진의 진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선 봉 박만화(朴萬華)·최덕일(崔德逸)·송판구(宋判九) 중 군 여운서(呂雲瑞)·김운서(金雲瑞)·김성학(金成學) 후 군 김사범(金士範)·윤명선(尹明善)·김성학(金成鶴) 참 모 전해산(全海山)·한사국(韓士國)·이광삼(李光三) 총지휘 박갑쇠(朴甲釗)·곽자의(郭子儀)·임종문(林宗文) 이들은 1907년 9월부터 1909년 사이에 장수(長水)·진안(鎭安)·임실(任實)·남원(南原) 등지에서 대소 17회의 전투를 전개하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1909년 박갑쇠는 임실 경찰서를 습격하였으며, 1910년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압송되던 도중에 탈주하다가 적과 접전 끝에 적에 잡혀 욕을 당하느니 죽는 것이 낫다고 여겨서 물에 투신하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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