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建斗
미상 ~ (1922)·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건두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만주에서 독립군 지원활동을 전개하였다. 3·1운동을 계기로 만주지역에서는 재만 동포들의 절대적인 지지 하에 70여 개의 독립군부대가 편성되었다. 이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국내진공작전을 전개, 일본군 국경수비대를 교란시키는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에서 만주에 진출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독립군은 이 두 전투에서 크게 패한 일제의 대대적인 탄압에 밀려 소련 등지를 전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유시참변 이후 다시 만주로 돌아와 항일투쟁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박건두는 이러한 시기인 1922년 만주 봉천성(奉天省) 유하현(柳河縣) 향양진(向陽鎭) 자신의 집에 독립군 10여명을 유숙시키는 등 독립군 지원활동을 전개하다가 일·중 경찰의 기습 공격을 받고 교전 끝에 독립군 3명과 함께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8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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