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景錫
(1888) ~ 1910-04-16·대한제국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경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9년 음력 윤2월 전북 부안군(扶安郡) 하동면(下東面)에서 유장열의진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전북 고창(高敞) 출신의 유장열은 1907년 정미의병기에 창의하여 1909년경 전북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1912년 말 임병찬(林炳贊)이 조직한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에 한훈(韓焄)ㆍ이기상(李起商) 등과 함께 참여하여 총독 데라우찌마사다게(寺內正毅)에게 정권반환을 요구하고 철병요구서를 제출하였다. 1913년에는 채기중(蔡基中)ㆍ유창순(庾昌淳)ㆍ한훈ㆍ김상옥(金相玉)ㆍ황상규(黃尙奎) 등과 경북 풍기(豊基)에서 광복단(光復團)을 조직하였으며, 1915년 대구의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과 통합하여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를 결성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박경석은 유장열의 휘하에서 동료 5명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의병 활동을 하였다. 1909년 음력 윤2월 20일, 전북 부안군 하동면 석동리(石洞里) 김일삼(金日三)으로부터 엽전 300냥을 군자금으로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09년 8월 12일 고부경찰서 수색대에 체포되었다. 1909년 9월 13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10년 4월 16일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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