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敬善
(1875-01-14)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경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5년 4월 영국인이자 멕시코 국적의 국제이민 브로커 마이어스와 일본의 대륙식산합자회사 직원 오바 간이치의 계략에 속아 한인 1,033명과 함께 멕시코로 노동 이민을 떠났다. 5월 11일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에 도착하여 4년간 에네켄농장에서 일하였다. 1909년 5월 미주 국민회 특파원 황사용(黃思溶)과 방화중(邦化重)의 지원으로 국민회 북미지방총회 산하에 메리다지방회(美利多地方會)가 설립되자, 창립회원으로 가입하였다. 1914년 동 지방회 평의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이후 탐피코로 이주하여 동 지방회에서 1922년 부회장, 1923년부터 1925년까지 총무, 1926년 부회장, 1927년 회장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27년 3.1절 기념식을 개최하였다. 1928년 동 지방회 대의원, 1929년에는 서기 겸 학무로 선임되어 같은 해 2월 국민회 창립기념식에서 국민회 헌장을 낭독하였다. 1929년 7월 멕시코시티로 이주하여 멕시코시티지방회(墨京市地方會)에서 줄곧 활동하였다. 1930년 총무, 1932년 총무 겸 재무, 선전부 수전위원(收錢委員) 등 3가지 업무를 수행하였다. 1932년 3.1절 기념식에서 예식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33년에는 동 지방회 부회장, 1934년에는 회장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이어 1935년에도 회장에 선임되었으나, 아내와 함께 귀국하기 위해 같은 해 2월 사면하고 3월 귀국하였다. 1912년부터 1935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8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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