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經玉
(1883)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경옥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여름 미국 의원단이 국내를 시찰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는 이를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알리는 기회로 판단하고, 만주의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 국내 폭탄 투척을 지시했다. 이에 광복군총영은 서울‧평양‧신의주의 세 도시에서 일제 침략기관을 폭파하는 계획을 세우고 결사대원들을 국내로 밀파하였다. 이 중 평양지역을 담당한 결사대 제2대의 대원은 장덕진(張德震)‧박태열(朴泰烈)‧안경신(安敬信) 등이었다. 이들은 국내에 잠입하여 의용단(義勇團) 평양지단(平壤支團)의 협조를 받아 의거를 추진하였다. 같은 해 8월 3일 3개 조로 나누어 계획을 추진하였다. 1조의 의용단원 김예진(金禮鎭) 등이 평안남도 도청에 폭탄을 던졌지만, 터지지 않자 문일민(文一民) 등이 다시 폭탄을 던져 평안남도 경찰부의 건물 일부를 파괴하였다. 2조의 안경신 등은 평양경찰서의 폭파를 시도했으나 빗물로 화약의 도화선이 젖어 성공하지 못했다. 3조의 여행렬(呂行烈) 등도 평양부청에 투탄하였다. 함경남도(咸鏡南道) 함흥군(咸興郡) 출신인 박경옥은 이와 같은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안경신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안경신이 함경도 각지에 은신할 때 은신처를 제공하며 지원했다. 그로 인하여 1921년 1월 경찰에 체포되어 6월 10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2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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