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根述
1890-08-15 ~ 1960-02-17·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근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칠곡(漆谷) 사람이다. 그는 1919년 3월 12일과 3월 14일 두 차례에 걸쳐 칠곡군 인동면(仁同面)에서 이상백(李相柏)을 비롯한 주민 3백여 명과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칠곡에서의 만세운동은 3월 7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이영식(李永植)이 선언서 20매를 이 마을의 유지 이상백에게 전달하면서 추진되었다. 이들은 거사일을 3월 12일로 정하고, 3월 11일에는 이상백의 집에서 태극기와 선언서를 제작·인쇄하였다. 박근술은 거사 당일인 3월 12일 밤 8시에 3백여 명과 함께 뒷산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때 일제의 탄압으로 중심 인물 일부가 붙잡히고 해산하였으나, 박근술 등 일제의 검거를 피한 인사들에 의해 만세시위는 다시 추진되었다. 그리하여 박근술 등은 3월 14일 오후 9시에 주민 2백여 명과 함께 뒷산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면서 독립에 대한 의지를 천명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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