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根澈
1920-07-09 ~ 2007-04-16·현대
이명·자·호 光井根澈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근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남 울산(蔚山) 사람이다. 1938년 4월 일본 장기(長崎) 현립농업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하면서, 일제의 학정으로부터 이탈하여야 하겠다는 결심하에 동지 심재인(沈載仁)과 독립운동의 방안을 논의하였다. 1941년 삼중(三重)고등농림학교에 진학해서도 동지들과 자주 독립에 대하여 토의하였는데, 동년 12월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자 우리나라가 독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여 고향 후배 등에게 징병 또는 학도병을 기피하고 때를 기다리자고 권유하는 서신을 발송하는 등 활동하다가 일경에 붙잡혀 1942년 2월 예천(醴泉)경찰서로 압송되었다. 그는 장기간에 걸친 취조와 고문 끝에 1943년 5월 7일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및 육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3월 사면되어 가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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