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金淳
(1881)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금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남 함흥군(咸興郡) 하조양면(下朝陽面) 흑림강(黑林江) 부근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3일과 4일 이틀째 시위가 일어난 함흥에서는 6일 하서리와 지경리(地境里)를 비롯하여 하조양면에서 다시 시위가 이어졌다. 6일 오후 8시경 박금순은 기회리(岐會里),인흥리(仁興里),풍흥리(豊興里)의 주민 400여 명을 흑림강 오른편에 모아놓고 선두에서 만세를 부르면서 시위에 들어갔다. 이때 힘을 얻은 군중들은 오로리(五老里) 헌병주재소까지 행진하며 만세를 부르고 일본의 침략을 규탄하였다. 이에 출동한 헌병들은 총칼로 군중을 해산시키고 박금순 등 3명을 체포하였다. 이 일로 박금순은 1919년 5월 24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1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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