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基範
1888-02-20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기범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박기범은 평북(平北) 위원군(渭原郡) 서태면(西泰面) 출신이며, 독립운동 당시에는 집안현(輯安縣) 일대에서 참의부(參議府) 소대장(小隊長)으로 활동하였다. 1923년 평북 초산군(楚山郡) 동면(東面) 양덕동(陽德洞)과 위원군 서태면 이산동 등에서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대에 들어 만주지역의 항일 독립운동세력에 대해 대대적인 탄압정책을 추진하고자 했던 일제는 1925년 6월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경무국장(警務局長)과 장작림(張作霖) 만주군벌(滿洲軍閥) 사이에 이른바 삼사협정(三矢協定)을 체결하는데 성공하였다. 협정이 체결된 이후 중국관헌(中國官憲)은 한인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여 일제 당국에 넘겨 보상금을 받거나 한인 양민들에 대해 부당하게 박해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박기범은 중국관헌에게 체포되어 집안현(輯安縣) 통구(通溝)에 수감되었다가 강계군(江界郡) 만포진(滿浦鎭) 경찰서로 인도되었으며, 1927년 9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등의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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