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基闢
1915-06-24 ~ 1999-06-02·현대
이명·자·호 Park Ki Buck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기벽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남 강서(江西) 사람이다. 1943년 미 육군 정보하사관으로 근무하면서 첩보활동을 통해 한국독립운동에 참가하였다. 미주에서 생활하던 박기벽은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인 1943년 3월 미군 육군에 입대하였다. 그가 미군에 입대한 것은 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위해서였다. 즉 대일전선에 참가하기 위해 미군에 입대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미군 정보하사관의 훈련을 마친 뒤 주로 중국·인도·미얀마 지역의 적정 수집 등에 종사하였다. 그후 그는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가 주도한 '냅코작전(Napko Project)'에 참가하였다. 냅코작전은 '한국내에 당장 침투하여 첩보, 지하조직 조성 등의 활동을 하고 사보타지와 무저항운동으로 이어갈 것'을 목적으로 한 미군의 국내 침투작전이었다. 이는 2,300만 한국 국민이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지지한다는 것을 전세계에 알리는 효과를 기대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무기조작법, 비무장 전투법, 지도읽기, 파괴, 무전, 촬영, 낙하산 훈련, 비밀 먹 사용법, 선전, 일본인의 특성 등에 관한 특수훈련을 받게 되었다. 이들 훈련이 끝나면 각각 5∼10명의 공작조로 나뉘어 서울, 평양, 평남의 농촌지역 등 국내 각지에 침투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할 계획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1945년 3월부터 미국 남가주(南加州) 카타리나섬에서 국내침투를 위한 특수훈련을 받던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1998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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