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南圭
1894-10-17 ~ 1932-10-13·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남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1년 1월 중에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九龍面) 동방리(東芳里)에서 친척 박길화(朴吉和)의 소개로 강철구(姜鐵求)를 만났다. 강철구는 대종교(大倧敎) 교인이자 만주에 소재한 대한군정서에서 활동하고 있던 인사였다. 박낙구는 강철구에게 군자금 800원을 주었으며, 이 돈은 대한군정서 서무부장 김택(金澤)에게 보내졌다. 1922년 음력 8월 박남규는 강철구에게서 독립공채(獨立公債) 3매를 받았다. 2~3일 후 부여군 남면(南面) 마장리(馬場里)에 있는 전영석(田泳奭)의 집에서 강철구 등을 만났다. 여기서 독립운동 자금 100원을 제공하고 독립공채 100원 권 1매를 받았다. 1923년 4월 부여군 내 유지들과 4~5천 원을 갹출하여 양화면(良化面) 입포리(笠浦里)에 봉명의숙(鳳鳴義塾)을 설립하고 학감(學監)을 맡았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9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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