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魯瑾
1928-09-21 ~ 1956-10-12·현대
이명·자·호 平野光應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노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박노근은 1943년경 경남(慶南) 진주군(晋州郡) 소재 진주공립중학교 재학 중 하익봉(河益鳳), 김상훈(金相勳), 강필진(姜必鎭) 등과 광명회(光明會)를 조직하였다. 광명회는 독서써클로 우리 역사를 공부, 토론하고 일제에 저항할 수 있는 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의한 단체였다. 이들 회원들은 평소 절친한 친구 사이로, 특히 그의 아버지와 하익봉의 삼촌이 독립군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졸업 후에는 모두 독립군에 가담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던 중 박노근은 1944년 9월 진주중학교 학생들과 함께 진해비행장(鎭海飛行場) 건설공사 현장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다. 이들은 천막으로 지은 막사에서 공동숙식을 하며 온갖 중노동에 시달렸다. 박노근을 포함한 광명회 동지들은 학생들에게 우리말 사용을 생활화할 것과 독립군의 활약상을 전파하는 등 민족의식의 고취를 위해 활동하다가 9월 23일 동지들과 함께 일본헌병대에 체포되었다. 박노근은 진해헌병대 영내에서 약 40일 동안 구금된 체 학교 내외에 퍼져 있는 항일운동과 조선독립을 위한 써클활동의 사실유무 등의 자백을 강요받으며 갖은 협박과 고문을 당하였다. 1944년 11월 동지들과 함께 군용트럭편으로 부산지검에 송치되어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부산형무소에 투옥되었다. 약 9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고 1945년 6월에 석방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0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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