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魯昌
1888-12-24 ~ 1977-05-06·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朴馨南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노창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4년 일제의 탄압이 강화되고 있던 시기에 만주 통화현 이도구(通化縣二道溝)에서 동지들과 함께 동화학교(東華學校)를 설립하여 민족의식과 자주독립 사상을 고취하는 민족교육의 실시에 힘썼다. 이후 독립사상을 고취하며 항일투쟁을 계속하던 중 1919년 5월경 대동단원(大同團員) 정남용(鄭南用)으로부터 대동단의 결성취지를 듣고 이에 찬동하여 동단에 가입·활동하였다. 대동단(大同團)은 3·1운동 직후 한민족의 민족역량을 결집하여 민족적 대동단결과 실력양성을 표방하고 민족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담당할 것을 목적으로 전 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이 주도하여 결성된 비밀결사였다. 동단은 김가진(金嘉鎭)을 총재로 추대하여 황족·유림·종교·상공·노동·청년·군인·부인·보부상 등 전 사회 각 계층의 인사들을 규합하려던 조직으로서, 주로 각종 인쇄물의 인쇄·배포 등을 통한 독립사상의 고취와 동단의 선전 및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그는 이건호(李建鎬)의 집에 영동활판소(永同活版所)라는 비밀 인쇄소를 차려 놓고 정남용·권헌복(權憲復)·이근고(李根高)·김용의(金用儀) 등과 함께 대동단의 기관지인 〈대동신보(大同新報)〉를 제작·발행하였으며, 또한 대동단규칙(大同團規則) 등 지하 문서와 각종 선전물을 인쇄·발송하는데 힘썼다. 이후 정남용의 지시를 받고 동지 규합과 군자금 모집활동을 펴기 위하여 〈대동신보〉, 〈대동단규칙〉을 소지하고 부산에 거주하는 구상서(具尙瑞)를 만나 그와 함께 선전물을 배포하는 등 선전활동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그의 활동상황이 일경에 탐지·붙잡혀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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