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達海
1886-05-14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달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평남 강서군(江西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태형(笞刑)을 받았다. 강서군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초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그 시작은 3월 2일 초리면(草里面)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이었다. 이날 초리면 이로리(伊老里) 기독교회 소속 보명학교(寶明學校) 교사와 학생, 그리고 주민들이 함께 만세를 불렀다. 이어 3월 3일 강서 읍내 장날에도 대규모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날의 시위는 기독교인과 천도교인이 함께 준비하였다. 오전 10시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삼창을 시작으로 군중이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가행진을 하자, 참여자가 4,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일제 헌병과 경찰 등의 무차별 발포로 현장에서 9명이 순국하고 4명이 다쳤다. 박달해는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1919년 4월 18일 평양지방법원(平壤地方法院)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6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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