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達弘
(1881)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달홍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평남 강서군(江西郡) 초리면(草里面) 보신학교(普信學校) 교정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강서군은 구한말 강서ㆍ증산(甑山), 함종(咸從) 등 세 고을을 아울러 신설된 군이다. 신교육과 기독교가 널리 보급된 곳으로 독립만세운동에도 이들의 역할이 컸다. 강서군에서는 3월 2일부터 만세시위가 시작되어, 3월 3일에는 군중 4,000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읍내 시장에서 일어났다. 3월 5일 밤에는 초리면 이로리(伊老里) 기독교 소속 보신학교에서 목사 김건후(金鍵厚)의 주도로 40여 명이 교정 앞에 모여 독립만세를 불렀다. 박달홍도 이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1919년 6월 1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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