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大根
1924-01-04 ~ 1989-09-20·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대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남 창원(昌原) 사람이다. 그는 1942년 7월경 창원군 창원면 동정리(東井里) 소재 창원신사(昌原神社) 뒤에서 창원보통학교(昌原普通學校) 출신의 급우 박상규(朴尙圭)·김광수(金光守) 등 10여 명과 함께 조국독립을 목적으로 청년독립회(靑年獨立會)를 조직하여 신사참배거부운동(神社參拜拒否運動)을 전개하였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는 한국 강점이래 일관되어 온 것이었으나 1931년 만주 침공이래 강화되었으며, 특히 1937년 중일전쟁을 전후하여 폭압적으로 자행되었다. 그리고 태평양전쟁의 전세가 기우는 상황에서 일제는 소위 국민총동원체제 아래 민족말살의 일환으로 신사참배를 더욱 강요해 갔다. 이러한 때 박대근 등은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면서 1943년 4월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벽보를 창원역과 주요 관문에 붙임으로써 민족의식 고취에 힘을 쏟았다. 그러던 중 이들의 활동이 1944년 12월 진해헌병대에 의해 발각되었고, 일제는 이 일을 '창원만세사건'이라 불렀다. 이로 인하여 그는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이첩 계류되어 8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다가 8·15광복을 맞이하여 부산형무소에서 출옥하였다. 이 때 고문의 여독으로 동지 중 백정기(白政基)·김명수(金明洙)는 출옥 직후 순국하였고, 박대근도 모진 고문의 여독으로 고생해야 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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