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大先
(1883)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대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7년 일제는 헤이그특사를 파견한 것을 구실삼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또한 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한국의 사법권·행정권 등을 장악하고 통감정치를 강화하였다. 정부 주요 부서에 일본인 차관을 임명하는 등 한국 식민지화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1907년 8월에는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으로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면서 의병운동이 전국적으로 더욱 확산되었다. 박대선은 1907년 음력 10월 20일경 조운식의진에 들어가 황목룡(黃木龍)·김성권(金成權)과 함께 옥천군 이남이면(伊南二面) 적령리(赤嶺里) 김여필(金汝必)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음력 11월 20일경에는 이남이면 오가동(梧柯洞) 정석현(鄭錫鉉)에게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0년 3월 16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8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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