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德實
1901-03-04 ~ 1971-03-01·현대
이명·자·호 淸川德子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덕실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진주군 진주면(晋州面) 평안동(平安洞)에 있는 기독교 계통의 광림학교(光林學校) 교사로 근무했다. 1919년 6월경 동향(同鄕)의 친구 박보교(朴寶喬)의 권유로 대한민국애국부인회에 가입하였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후 이를 지원하고 독립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조직된 항일여성단체로서 서울과 평양, 그리고 중국 상하이(上海)에 각각 결성되었다. 서울의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회장은 김마리아(金瑪利亞)였으며 각지에 지부를 설치했는데, 박덕실은 진주지부에서 활동하였다. 9월 대한적십자회 대한지회 진주지부(晋州支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다. 대한적십자회는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이의경(李義儆)이 독립운동을 위해 조직하여 그 총지부(總支部)를 서울에 두었다. 동지를 규합하기 위해 통신원(通信員) 이종욱(李鍾郁)을 파견하여 활동을 펼쳤던 조직이다. 1919년 9월 서울에 사무소를 열고 이병철(李秉澈)을 간사 및 명예회원으로 추대하고 각 도(道)에 지부(支部)를 두어 회원 및 의연금(義捐金)을 모집하였다. 10월 홍수원(洪秀瑗) 등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할 목적으로 비밀결사 혈성단(血誠團)을 조직했다. 박덕실은 광림학교 내 자택이나 기숙사를 회합의 장소로 제공하기도 했다. 11월 대한민국애국부인회가 남성들 중심의 대한독립청년외교단(大韓獨立靑年外交團)과 함께 경상북도경찰부에 발각되었다. 이때 여러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검찰로 송치되었다. 12월 26일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1920년 당시 통영부인회(統營婦人會)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4월 30일 통영부인회 제1회 강연회에서 「조선 여자여, 춘몽(春夢)을 각성(覺醒)하라」는 제목으로 연설하였다. 1923년 당시 진주기독교여자청년회 회장으로서 여자해방강연회(女子解放講演會) 개최, 삼가여자야학(三嘉女子夜學) 설립 등 각종 사회활동과 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1924년 12월 2일 진주에 독립적인 여자보통학교(女子普通學校)의 설립을 목표로 하는 실행위원으로 선정되었다. 진주여자청년회 임원으로 활동하던 1926~27년에도 야학회를 개최하는 등 진주지역의 여성교육을 위해 노력하였다. 1927년 4월 7일 근우회 진주지회 설립대회에서 임시의장으로서 대회를 이끌었다. 그 자리에서 신임위원(新任委員)으로 선정되어 활동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8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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