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德允
1899-03-21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덕윤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황해도 옹진군(甕津郡)에서 비밀결사 대한국민적십자회(大韓國民赤十字會)에 가입하여 동지를 모집하고, 1921년 6월 옹진군 흥미면(興嵋面) 안락경찰관주재소(安樂警察官駐在所)에서 무기 획득 활동을 벌이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박덕윤은 조종수(趙宗秀)ㆍ차문옥(車文玉)ㆍ조평도(趙平道)ㆍ김창수(金昌洙)ㆍ신재균(申在均) 등과 함께 대한국민적십자회에 가입한 뒤 1919년 8월부터 1920년 12월까지 독립사상을 선전하며 회원 수십 명을 모집하였다. 조종수는 1921년 3월경 차문옥에게 옹진군 흥소면(興沼面)에 소재한 안락경찰관주재소에 비치된 권총과 탄약을 획득하라고 지시하였고, 이에 차문옥은 박덕윤과 함께 1921년 6월 1일경 동 주재소에서 권총 한 개와 탄환 24발을 획득하였다. 이와 같이 박덕윤은 군자금 모집과 권총 획득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1년 10월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과 절도죄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공소했지만, 1922년 1월 2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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