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東梧
(1884)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동오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만주에서 조직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군의(軍醫)로 항일무장투쟁을 지원하였다.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는 1919년 11월 부민단(扶民團)과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등 서간도지역의 독립운동단체들이 기존의 조직을 확대하여 한족회(韓族會)로 개편함과 동시에 군사조직으로 군정부(軍政府)를 편성하는 과정에서 결성되었다. 총재는 이상룡(李相龍), 부총재 여준(呂準), 참모장 이탁(李沰) 등이 선임되었다. 군자금 모집과 선전 활동 및 군사 활동에 주력하였다. 군자금의 모집은 주로 한족회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군사 활동은 신흥무관학교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전개되었다. 서로군정서는 국내의 친일파 관료, 적의 밀정(密偵) 및 서간도 지역의 친일단체인 보민회(保民會),거류민회(居留民會)등의 간부에 대한 처단활동을 전개하였다. 박동오는 1922년 남만(南滿)지역에서 서로군정서 의용군 위생부(衛生部) 과장(課長)이 되었으며, 192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만독판부(駐滿督辦府) 군의(軍醫)로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1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