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東俊
1915-07-27 ~ 1970-05-04·현대
이명·자·호 竹山東俊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동준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33년 2월 상순경 완도군 군외면(郡外面)에서 ‘완도운동협의회(莞島運動協議會)’에 가입하였다. 5월 14일 비밀결사 전남운동협의회가 조직되었는데, 완도를 중심으로 동지를 규합하고 청년반(靑年班)을 조직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전남운동협의회는 주로 완도와 해남(海南)을 중심으로 하면서 장흥(長興) 등 5개 지역에서 혁명적 농민조합 등을 조직해 항일투쟁을 전개한 지도기관이었다. 농촌진흥회(農村振興會)·야경단(夜警團) 등에 참여하거나 이를 조직하여 혁명적 농민운동의 대중적 기반을 확보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박동준은 9월 군외면 불목리(佛目里)의 자택에서 김인학(金仁學) 등과 회합하여, 일반 무산자(無産者)의 친목과 공동이익의 신장을 목적으로 친목회(親睦會)를 설립하였다. 친목회를 통해 일반 농민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선진적인 동지를 규합하여 전남운동협의회에 가입시키려는 취지였다. 12월 말경 자택에서 황동윤(黃同允) 등과 회합하여, 김인학을 책임으로 하는 청년반(靑年班)을 조직하고 반원(班員)으로 활동하였다. 1934년 2월 말경 동지들과 함께 완도경찰서(莞島警察署)에 체포되었다. ‘전남운동협의회사건’에 연루된 것이다. 9월 8일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검찰로 송치되었다. 15일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 목포지청(木浦支廳)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8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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