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命緖
1902-05-15 ~ 미상·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명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벌어지고 그 소식이 전국으로 알려지자 전라남도 영광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박명서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는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과 같이 다수가 만세시위에 참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3월 31일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포보통학교 교사 나계형(羅啓炯)에게 독립운동의 취지를 설명하며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학생 10여 명을 직접 만나 만세운동 참여를 설득했다. 더불어 구한국기 20여 개를 제작하고 주민들에게도 만세운동을 일으키자고 권유하였다. 그로 인하여 체포되어 1919년 5월 10일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4월과 벌금 3원 형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여 6월 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 부분 취소되어 징역 4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2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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