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武柄
1887-09-22 ~ 1979-04-15·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무병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북 청주(淸州) 사람이다. 그는 1920년 2월 16일 서울에서 김광제(金光濟)·문 탁(文鐸)·김영만(金榮萬)·이종만(李鍾萬) 등과 더불어 조선노동대회(朝鮮勞動大會)를 조직하였다. 동회는 노동자의 상호부조와 인격적 및 지적향상을 목적으로 한 계몽적 노동단체로서 주로 지식계몽에 주력하였다. 총재는 권직상, 회장은 김광제가 맡았으며 그는 간사로 활동하였다. 동회는 전국적으로 지부를 설치하고 지방의 기존 노동단체의 규합에 힘써 한때 회원이 8천여명에 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내부갈등과 재정난으로 활동이 위축되던 중 1924년 4월에 통일적이고 전국적인 노동단체인 조선노농총동맹(朝鮮勞農總同盟)에 합류하였다. 그는 또한 1920년 5월 31일 서울에서 김영만·이종만·홍갑표(洪甲杓) 등 89인과 더불어 물산장려·상부상조·인권평등에 의한 세계평화의 확립을 취지로 하는 조선민단(朝鮮民團)을 조직하였는데 동단은 조선노동대회의 별동조직이었다. 그는 동단의 총무로 활동하였다. 조선민단은 1920년 7월 17일 경성 중앙기독교회관에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그와 임종연(林鍾淵)이 연사로 나서 각기 '때가 왔다', '죽엄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연설하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순천자(順天者)가 역천자(逆天者)를 망하게 할 때가 왔다. 역천자인 일본을 망하게 하여 국권을 회복하여야 한다"라는 취지의 강연으로 천 수백여명의 청중들에게 독립의식을 고취하였다. 이일로 인하여 그는 일경에 붙잡혔고 동단은 1920년 7월 31일 해산당하였다. 그는 1920년 12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는 출옥 후인 1923년 3월 승려가 되어 법주사(法住寺)에 들어가 일제의 멸망을 기원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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