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文涉
(1879)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문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중국 관전현(寬甸縣)에 소재한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에 입단해 1921년 평북 의주군(義州郡)ㆍ구성군(龜城郡)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대한광복단은 1919년 3ㆍ1운동 직후에 김성극(金星極)과 김성륜(金聖倫)이 이범윤(李範允)을 단장으로 추대하고 공교회(孔敎會) 인물들을 중심으로 왕청현(汪淸縣) 대감자(大坎子)와 의란구(依蘭溝) 일대에서 조직되었다. 단장 이범윤은 상징적 인물이었으며, 중부대판(中部大辦)의 직함을 가졌던 김성륜이 실제 책임을 맡았다. 이념적으로는 대한제국(大韓帝國)의 복벽(復?)을 주장하였다. 1920년 8월 현재 병력 200여 명에 소총 400정, 탄약 1만 1천 발, 권총 30정의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박문섭은 1920년 12월 평북 구성군에서 이운봉(李運鳳)ㆍ김시옥(金時沃)ㆍ김정엽(金正燁)ㆍ김덕희(金德熙) 등의 권유에 따라 대한광복단에 입단해, 1921년 2월 3일 평북 의주군 고령삭면(古寧朔面) 동고동(東古洞), 11월 20일에는 평북 구성군 관서면 대하동(大蝦洞)과 원봉동(圓峰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었다. 1921년경 5월 3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았다. 1921년 10월 26일 평양복심법원과 11월 24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공소와 상고가 기각되어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6년 6월 25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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