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文術
미상 ~ 1913-07-26·조선
강원도 울진(蔚珍) 사람이다. 일제는 1905년 화폐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더니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내정을 간섭하였다. 1907년에는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내정을 완전 장악한 후 군대마저 강제 해산하였다. 이제 대한제국은 자주권을 잃어 사실상 국권을 상실한 것과 같았다. 이와 같이 국망(國亡)의 조짐이 심화되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와 항쟁하였다. 대한제국군 출신의 해산 군인을 비롯하여 새로이 많은 인사들이 거의하여 의병전쟁을 전민족적 운동으로 발전시켜 갔다. 아울러 의병진의 전력도 증강되어 전국 곳곳에서 일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일부 기록에 의하면 1907년 이후 1909년까지의 의병 전사자가 10만 명으로 알려질 정도로 국권회복을 위한 의병들의 항쟁은 처절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시기에 박문술은 분연히 일어나 군사들을 규합하여 의병장으로 강원도, 황해도 일대에서 일군과 교전하는 등 끈질긴 투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경술국치 이후에도 항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1911년 5월에는 강원도 삼척군(三陟郡) 원덕면(遠德面)과 경북 봉화군(奉化郡) 소천면(小川面)에서 밀고자를 처단하는 등 활동을 계속하였으나 끝내 일경에 붙잡히고 말았다. 그리하여 1913년 5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사형을 받고 같은 해 7월 형집행으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9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