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丙洙
(1884)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병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9년 전남 함평(咸平)ㆍ나주(羅州) 등지에서 이강산의진(李江山義陳)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항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이강산은 1909년 7월 하순경 함평군 대야면(大也面) 복룡리(伏龍里)에서 동지 박치일(朴致一)ㆍ정인술(鄭寅述)ㆍ박장봉(朴章奉)ㆍ서성학(徐成學)ㆍ양창국(梁昌國) 등과 의거의 기치를 올렸다. 박병수는 1909년 8월 이강산이 박치일ㆍ정인술ㆍ박장봉ㆍ서성학 등과 함께 이양삼(李良三)의 주막집에 있는 일제의 밀정 이판안(李判安)ㆍ김정태(金正泰)ㆍ최치도(崔致道)ㆍ박복남(朴福男) 등을 처단할 때, 양창국(梁昌國)과 함께 밀정 처단에 참여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12월 25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 및 모살죄(謀殺罪)로 종신징역을 받고 공소했지만, 1910년 3월 8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다. 같은 해 4월 27일 고등법원에서 상고도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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