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炳翰
1888-09-17 ~ 1968-08-08·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朴炳漢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병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이후 경북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에 보낼 것을 계획하고, 지방의 부호들에게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박병한은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내자는 정인옥(鄭寅玉)의 계획에 찬동하여, 임종룡(任鍾龍)ㆍ박노동(朴魯東)ㆍ김병태(金秉泰)ㆍ전상준(全相俊)ㆍ홍순창(洪淳昌)ㆍ윤상욱(尹相旭)ㆍ권명상(權命相)ㆍ진진권(陳振權)ㆍ홍승욱(洪承旭)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1년 5월 30일 한성규(韓星奎)와 함께 경북 봉화군(奉化郡) 물야면(物野面) 가평리(佳坪里) 홍재명(洪在明)의 집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소속임을 알리고 독립을 고취하는 문서를 보이며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1년 8월 4일 공주지방법원 충주지청에서 이른바 사기죄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2년 6월 17일 임종룡과 함께 경북 문경군(聞慶郡) 호서남면(戶西南面) 신기리(新機里) 유성옥(劉盛玉)의 집에서 다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었다. 1923년 3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강도죄로 징역 8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28년 2월 1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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