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鳳來
1870-02-08 ~ 1954-01-02·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봉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북 청주(淸州) 사람이다. 1915년 신한혁명당(新韓革命黨)의 당원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신한혁명당은 1915년 이상설(李相卨)과 박은식(朴殷植) 등이 상해에서 결성한 독립운동단체로서 활동의 근거지를 북경(北京)으로 옮긴 뒤 광무황제를 당수(黨首)로 추대하고 비밀리에 망명 계획을 세워 갔다. 이들의 계획은 광무황제를 북경으로 망명시킨 뒤 중국·독일과 연맹을 맺어 일본과 전쟁을 치러 독립을 쟁취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신한혁명당에서는 외교부장 성낙형(成樂馨) 등을 국내에 보내어 광무황제와의 연결을 도모하였는데, 이 때 광무황제와의 접촉은 변석붕(邊錫鵬)이 맡았다. 이를 위해 변석붕은 박봉래(朴鳳來)·김승현(金勝鉉) 등을 동지로 규합하는 한편 경각서(警覺書)를 작성·배포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박봉래는 양반 출신으로 궁내부 주사를 역임한 바 있었는데 심인택의 권유로 이와 같은 계획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에 나섰다. 그리하여 박봉래는 변석붕으로부터 독립운동에의 참여를 촉구하는 내용의 경각서를 교부받아 이를 배부하는 등 활동하였다. 그런데 이 일이 발각됨으로써 붙잡힌 그는 1915년 10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8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0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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