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善敬
(1882)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선경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9년 전북 순창(淳昌)ㆍ임실(任實) 등지에서 최산흥의진(崔山興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전북 순창 출신 최산흥은 1906년 10월 이경춘(李慶春) 의병장의 휘하에서 태인(泰仁)ㆍ부안(扶安) 등지에서 활동하였으며, 1907년 7월부터 이석용(李錫庸) 의병장과 함께 임실ㆍ남원(南原)ㆍ진안(鎭安)ㆍ용담(龍潭) 등지에서 일군과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1908년 6월에는 양윤숙(楊允淑) 의병장의 중군장(中軍將)으로 임실ㆍ순창 등지에서 일군과 교전하였다. 이어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1910년 순국하였다. 박선경은 최산흥의진에 참여하여 1909년 음력 4월 30일부터 의병 10여 명과 함께 전북 순창ㆍ임실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음력 5월경 신성모(申聖模) 등 6~7명과 함께 임실 기곡리(基谷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었다. 1910년 4월 27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 및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12년 9월 13일 징역 3년으로 감형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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