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聖三
(1876)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성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광주(廣州) 사람이다. 경기도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약하였다. 러일전쟁 직후 일제의 강요와 위협 아래 1905년 11월 체결된 「을사륵약(乙巳勒約)」은 우리 민족에게 국망의 위기를 절감하게 하였다. 국권강탈 행위인 을사륵약은 일제가 그간 은폐해 왔던 한국 식민지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우리 민족은 본격적인 반일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그것은 크게 두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하나는 장기적인 실력양성운동으로 언론활동·종교활동·교육활동·학술활동 등을 통한 국민 계몽운동이었고, 다른 하나는 즉각적인 무력투쟁인 의병운동이었다. 특히 의병운동은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7條約)」에 따른 군대해산으로 해산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전국적인 국민전쟁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박성삼은 이같은 시기에 경기도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특히 그는 1907년 11월 20일 경기도 광주 청계산(淸溪山)에서 일본 순사대와 교전하였다. 그리고 이후 1908년 2월경까지 경기도 일대에서 군자금품을 수합하면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붙잡혀 1908년 11월 10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유형(流刑) 5년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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