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性海
1898-12-24 ~ 1929-06-19·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성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상순 부산공립상업학교 재학 중 평양의 지인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송부받고, 3월 9일 부산부 좌천동의 자택에서 김태곤(金兌坤), 최익수(崔益守) 외 7명과 협의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후 김태곤·최익수 등과 부산공립상업학교와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 등의 만세운동 참여를 독려하던 중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박성해는 1919년 5월 15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았고, 1919년 6월 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기까지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8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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