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壽燦
1867-10-27 ~ 1922-08-14·대한제국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수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박수찬은 경북 청송 출신으로 1906년 3월 경북 영해에서 창의하였던 신돌석의진(申乭石義陣)의 참모장(參謀長)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 1906년 3월 13일 영덕에서 창의한 신돌석은 경상북도,강원도 등 동해안 일대에서 기민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신돌석은 일월산(日月山),백암산(白巖山),대둔산(大遯山),동대산(東大山) 등지에서 유격전을 전개함으로써 일본군을 위협하였다. 1907년 8월 군대해산 이후 구한국군의 합세로 군세를 크게 떨쳐 영양,진보,청송,경주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파하기도 하였다. 1908년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의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였다가 돌아온 후 평해,영양,울진,봉화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11월 18일 영덕 눌곡에서 김상열 형제들에게 피살되었다. 박수찬은 의병장 신돌석의 매부(妹夫)로 1906년 3월 창의한 신돌석의진의 참모장(參謀長)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 박수찬이 관군에 체포되자 당시 10세인 그의 아들 덕술(德述)이 지극한 효성으로 구명을 벌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0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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