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純鎬
1873-01-08 ~ 1934-05-30·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德巖(號), 朴汪鎬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순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김용호(金容鎬)의 문인으로 1919년 곽종석(郭鍾錫)·장석영(張錫英)·김창숙(金昌淑) 등의 유림들이 파리강화회의(巴里講和會議)에 독립을 청원하기 위해 작성한 청원서에 서명 날인하였다. 3·1운동 직후 김창숙은 “망국의 책임을 져야 할 유교가 이번 독립운동에도 참여치 않았으니 세상에서 오유(汚儒) 부유(腐儒)라고 매도할 때에 우리는 어찌 그 치욕을 견디겠는가?”라고 한탄하고 유림을 중심으로 한 국제활동을 추진하였다. 제1차 유림단운동 또는 파리장서운동으로 불리는 이 운동은 3·1운동 때 민족대표로 동참하지 못했던 유림 137명이 서명함으로써 명실상부한 민족대연합전선을 완성하게 된 것이다. 또한 국제사회에 한국의 독립 의지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유림계에도 각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4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04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