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勝黙
1922-10-01 ~ 1976-05-26·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승묵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남 금산(錦山) 사람이다. 그는 1940년 5월 11일 금산읍의 각종 업소에 근무하는 18세 내외의 청년동지 7명과 더불어 친목을 우장한 항일결사 시장친우계(市場親友 )를 조직하였다. 동계는 동년 7월 진락동지회(進樂同志會)로 명칭을 변경하고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펴나갔다. 동회는 항일운동의 방안으로 우선 일제의 지원병 강제모집에 반대하여 불합격자초운동(不合格自招運動)을 펴기로 하고 매월 15일에 모임을 갖고 이의 추진상황을 검토해 갔다. 또한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독립군(韓國獨立軍)과 접선하여 항일운동의 방안을 모색할 목적으로 동지인 최병무(崔秉茂)를 중국에 파견하였다. 이에 필요한 여비 2백원은 동 회원들이 40원씩 분담하여 마련하였다. 한편 그는 1940년 9월 17일 문대식(文大植) 등 3인과 더불어 금산군 남이면(南二面)의 관광명소인 진락산동굴(進樂山洞窟)의 암석에 페인트로 대형태극기를 그리고 조선독립만세라고 조각된 목탑(木塔)을 건립하여 항일민족의식의 고취에 힘썼다. 이일로 인하여 그는 1941년 2월 17일 일경에 붙잡혀 1942년 5월 13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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