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信愛
1889-06-21 ~ 1979-04-27·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신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도 봉산(鳳山) 사람이다. 미주 하와이에서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지원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1920년대 말 임시정부 주석 김구로부터 재정부족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편지를 받고 하와이 동포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는 한편 자금모집에 앞장섰다. 당시 임시정부는 본국 뿐만 아니라 만주와의 연락이 모두 끊겨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미국 하와이의 애국부인회를 주도하던 그는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조국 독립의 기회로 포착하고 중국 관내지역에서 활동하던 임시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이루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중일전쟁의 발발과 함께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한국국민당·한국독립당·조선혁명당 등 중국 관내 독립운동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광복진선(韓國光復陣線)을 결성하였다. 이러한 광복진선에는 미주지역의 6개 단체들도 참가하였다. 이때 그도 애국부인회의 대표로 광복진선에 참가하였다. 광복진선은 중일전쟁을 한·중 민족의 생사 존망이 걸린 최후의 관건으로 파악하고, 중국과 함께 항일전선에 참가할 것을 결의하는 등 한중연대를 강조하였다. 이렇듯 그는 미주에서 중국관내 독립운동을 지원하면서 독립운동자금을 수합하는 한편 한인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힘을 쏟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7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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