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良順
1903-04-05 ~ 1972-04-06·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양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기독교 계통의 배화여학교에 재학하던 중 김경화(金敬和) 등 동료 학생들과 함께 3.1운동 1주년을 기념하여 만세시위운동을 벌일 것을 계획하고 이를 주도하였다. 이들은 1920년 3월 1일 아침 8시 반경에 학교 교정(校庭)과 기숙사 뒤편 언덕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는 서울 시내 각 학교 학생들의 공모에 의해 일어난 것이었다. 배화여학교뿐만 아니라 진명여학교(進明女學校) 등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동료 학생 23명과 함께 재판을 받았다. 1920년 4월 5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다음날인 4월 6일에 풀려났다. 이후 이른바 ‘1920년 은사(恩赦)’로 징역 3월로 변경되었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8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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