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永壽
1897-07-22 ~ 1957-06-17·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東鄕永壽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영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음력 8월경 경상북도 안동군 풍북면(豊北面)에서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 흠치교에 가입하였다. 흠치교는 차경석(車京石)이 교주로 ‘조선독립’을 지향하는 모습을 보였다. 흠치교의 신자 및 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다 1921년 5월 체포되어 같은 해 7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같은 해 11월 대구복심법원에서 면소를 받았다. 1924년 6월 안동청년회관에서 “산업개전(産業開展), 동지단결”을 목표로 한 안동실업단(安東實業團) 창립총회가 열렸고 집행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25년 4월 안동청년회가 주관하는 메이데이와 어린이날을 기념하기 위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해 5월 안동에서 기근구제회가 조직되고 집행위원을 맡았다. 같은 해 9월 경북청년연맹이 창립되었고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5년 8월 경상북도 안동에서 12단체 연합회의로 결성된 ‘예천 형평사 습격 사건’ 조사회 집행위원을 지냈다. 1926년 1월 15일 안동청년동맹 주최의 기념강연에서 「반(反)군국주의와 청년운동」이란 주제로 강연하였다. 같은 해 2월 6일 조사회 활동과 관련해서 발생한 ‘명예훼손 고소 사건’으로 인해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벌금 50원을 받았다. 1929년부터는 신간회 안동지회 조사연구부 총무간사 등으로 활동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21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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