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永淑
1891-07-20 ~ (1965)·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韓英淑, 韓英菽, Louisa P.Hahn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영숙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하와이 호놀룰루 한인기숙학교를 다녔다. 1913년 7월 22일 유학을 목적으로 약혼자 한시대(韓始大)와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여 8월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1914년 9월 한시대와 혼인하고 미국식으로 남편 성을 따라 한영숙이 되었다. 1919년 3월 다뉴바에서 강원신·한성실·김혜원 등 부인들과 함께 25일부터 30일까지 협의한 끝에 신한부인회(新韓婦人會)를 조직하고 서기로 선정되었다. 같은 해 5월에는 다뉴바에서 신한부인회와 새크라멘토의 한인부인회가 통합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를 계기로 그해 8월 부인회가 모여 통일기관인 대한여자애국단을 설립하였다. 10월 대한여자애국단 총부(總部)를 조직하자, 총부 위원으로 선정되어 1924년까지 활동하였다. 남편과 함께 대한인국민회 다뉴바지방회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21년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 부원, 다뉴바 국민대표회 기성회 회원, 1922년 3월 애국단 다뉴바 총부 재무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30년 9월 대한인국민회 딜라노지방회가 조직되자, 1939년까지 남편과 함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대한인국민회 창립기념식, 3.1기념식, 고 안도산 선생 추도식 등에서 노래와 사회 등으로 봉사하였다. 1937년 10월 흥사단(興士團) 단우로 입단하여 제296단우가 되었다. 1940년 4월 대한인국민회 기관지 『신한민보(新韓民報)』의 식자기계 의연 모집위원회 수전위원으로 선정되었다. 1940년 11월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딜라노지방 대한여자애국단 단원들과 함께 500달러를 대한민국임시정부로 송부하였다. 이를 계기로 딜라노에 정식으로 대한여자애국단 지부를 조직하고 재무로 선정되어 1942년까지 활동하였다. 1944년에는 대한여자애국단 딜라노 지부 단장이 되어 10월 주미외교위원부 개조를 위한 전체 대표회, 1945년 1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전체대표회에 대한여자애국단 대표로 참석하였다. 1919년부터 1945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7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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