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英淳
1925-12-17 ~ 2001-04-06·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영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 이천(利川) 사람이다. 그는 1939년 5월 박성록(朴聖錄)과 함께 항일독립운동을 펴기로 뜻을 모으고 동년 8월 29일 인근지역의 청년 9명을 규합하여 황취소년단(荒鷲少年團)을 조직하였다. 그는 동단의 단장으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닭을 기르고 보리·콩 등을 경작한 수입으로 동단의 경비를 조달하였으며 단원들은 매주 1∼2회씩 담력키우기, 체력과 정신력 단련 등을 통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할 역량을 쌓아갔다. 이들은 항일격문을 작성하여 전라도 지방의 각 군수들에게 우송하는 한편 눈에 잘 띄는 거리의 요소에 이 격문을 부착하여 동포들의 항일독립의식을 고취하였다. 또한 단원들은 충무공사당(忠武公祠堂)을 참배하며 민족의식과 독립의지를 다져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활동을 펴던 중 1942년 3월경 그를 비롯한 단원들을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1943년 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2년, 장기 3년형을 선고받고 인천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2월 11일 가출옥하였다. 그는 출옥 후에도 소위 사상보호관찰소 대화숙(大和塾)에 연금당하였으나 신병으로 동년 5월에 풀려났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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