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泳燦
1896-06-16 ~ 1930-03-06·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朴永贊, 朴永燦, 朴永三, 朴應麟, 朴泳贊, 朴英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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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영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5월 만주로 이주한 뒤 항일단체에 가입했다. 1920년 10월경 의주군(義州郡)·삭주군(朔州郡)·구성군(龜城郡)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1920년부터 1921년까지 평안북도 일대에서 천마산대(天摩山隊) 참모로 항일무장 독립투쟁을 전개하였다. 천마산대는 3.1운동 이후 최시흥(崔時興)·최지풍(崔志豊)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항일 무장독립운동 단체였다. 평안북도 의주군·삭주군·구성군의 접경에 있는 천마산을 근거로 활동하였다. 천마산대의 활동은 1922년까지 이어졌는데 최시흥 등 주요 대원들이 검거됨에 따라 중단되었다. 1922년 1월에는 중국 펑텐성(奉天省) 콴텐현(寬甸縣)에서 남만통일후원대(南滿統一後援隊) 대원, 1925년 4월에는 정의부(正義府) 관동지방(寬東地方) 행정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정의부는 길림민회(吉林民會)·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성단(義成團)·독립군단(獨立軍團) 등 12개 독립군단체의 통합체로 1924년 11월 조직되었다. 펑텐성과 지린성(吉林省)을 세력 범위로 했으며 군사 활동뿐만 아니라 교육과 선전 활동도 꾸준히 전개하였다. 훗날 3부 통합 과정에서 국민부에 통합되었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8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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