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永夏
생몰년 미상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영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7년 5월 미국에 이주하여 캘리포니아주 다뉴바에 거주하였다. 1922~23년 북미 대한인국민회 다뉴바지방회의 구제원으로 활동하였다. 1932년 일본의 상해(上海) 침공을 기회로 북미 대한인국민회가 조직한 ‘상해사변 임시위원부’의 위원으로 선정되었다. 1932~33년 캘리포니아주의 남부지방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했다. 1938년 북미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회의 공제회원으로 활동했다. 1943년에는 중가주지방회의 실업위원과 감찰위원을 역임했고, 1944년 중가주지방회의 대표위원으로 북미 대한인국민회 대표대회에 참석했다. 1945년 다뉴바지방의 대표로 재외한족대회에 참석하여 한국의 독립을 위한 방안을 협의했다. 1917년부터 1945년까지 다뉴바에서 과일을 판매한 수익을 모아 의무금·독립의연금·애국금·한인승리공채·임시정부 후원금 등의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더불어 독립운동 관련 적십자회금·독립신문 의연금·특별외교비 의연금 등을 기부했다. 1937년에 중일전쟁이 시작되자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동정금을 제공했다. 정부는 202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23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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