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龍達
1901-11-18 ~ 1954-05-12·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용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18일 경북 영덕군(盈德郡) 영해면(寧海面) 장날, 성내리(城內里)에서 2,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시장을 행진하였다. 시위대는 해산을 요구하는 영해경찰관주재소 주임순사 등을 구타하고, 주재소를 습격하여 파괴하고 총기, 탄약, 서류를 파기하였다. 영해공립보통학교와 영해심상소학교, 영해면사무소, 영해우편소 등을 차례로 공격하여 건물과 비품을 파괴하고 문서를 파기하였다. 급보를 접한 영덕경찰서장 등 4명이 현장에 출동하여 해산을 명령하였으나, 시위대는 기와장과 돌을 던지고 곤봉을 휘두르며 대항하였다. 서장 등이 본서로 돌아가려 하자 군중들은 서장 일행을 포위하고 그들이 소지하고 있던 칼과 총기를 빼앗고 제복과 모자를 찢어버렸다. 이러한 격렬한 항쟁은 밤늦게까지 지속되었다. 3월 19일까지 만세시위는 계속되었다.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던 박용달은 체포되어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위반·주거침입 훼기·상해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7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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