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容守
1922-05-19 ~ 1994-05-28·현대
이명·자·호 柏原忠典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용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전시체제기에 들어간 상황에서도 학생들의 항일운동은 작은 규모의 조직 및 개인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전라남도 여수군(麗水郡)의 여수공립수산학교에서는 1929년에 비밀결사 ‘독서회’결성의 경험이 있었다. 1942년 여수수산공립학교의 한 일본인 교사가 전체 학생 앞에서 한민족을 모욕하는 발언을 해서 학생들의 원성이 높아졌다. 같은 해 11월 박용수는 일본인 교사들에게 “민족차별적 언행을 시정해 줄 것과 한국어를 쓸 수 있도록 할 것, 민족차별이 심한 일본인 선생 한 사람을 내보낼 것” 등을 요구하며 수업 거부 투쟁을 일으켰다. 박용수는 5학년 재학 중 일으킨 시위로 인해 검거돼 1943년 1월 13일 ‘폭력행위 등 처벌법 위반’으로 기소유예를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0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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