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容喆
1904-01-22 ~ 1976-03-26·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용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강원도 철원(鐵原) 사람이다. 1919년 철원농업학교 재학 중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경고문·호소문 등을 유인 배포하고 군청 앞 등에서 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었으나, 연소자이기 때문에 1919년 9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1922년 4월 상해로 망명하여 상해청년동맹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1924년 11월경에는 청년동맹회 후보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7년 3월 26일 상해 3·1당에서 한인청년회가 창립되자 그는 감사위원에 선임되어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1931년 12월 24일 제23회 의정원 회의에서 염온동(廉溫東)·염석락(廉錫輅)과 함께 강원도 대표 의원으로 선출되어 의정활동에 참여하였다. 1934년에는 항주(杭州)에서 부활된 한국독립당 조직에 참여하여, 기관지 진광(震光)의 발행에 관여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1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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