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雨日
(1879) ~ 1910-01-31·대한제국
이명·자·호 朴禹日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우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6년부터 1907년까지 충남에서 민종식의진(閔宗植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고, 1909년에는 전남 함평군(咸平郡)ㆍ영광군(靈光郡), 전북 부안군(扶安郡) 등지에서 박도경의진(朴道京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박우일은 1906년부터 1907년 2월까지 민종식의진의 좌익장(佐翼將)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항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박우일은 1909년 2월 1일 부안군 변산(邊山)에서 의병장 박도경의 부하가 된 이래 함평ㆍ영광ㆍ무장(茂長)ㆍ고창(高敞)ㆍ흥덕(興德)ㆍ부안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과 정탐 활동을 하였다. 1909년 2월 10일 의병 5명과 함께 전남 영광군 신광면(新光面) 면장 이 모에게 엽전 1백 냥을 모집하였고, 2월 하순에는 의병 3명과 함께 전남 함평군 홍동리(紅洞里) 백 진사의 집에서 엽전 4백 냥을 모집하였다. 그 후 박도경의 명을 받고 줄포(茁浦)에서 일본 기병ㆍ헌병ㆍ순사 등의 경비 상황과 일본인의 수, 지리 등을 정탐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6월 17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종신징역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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